字而燮(이섭) 號遯菴(둔암)선조(宣祖) 丙申(一五九六)生 효성과 우애심이 돈독하셔 부모님의 상(喪)에 시묘(侍墓)살이를 하셨다.숙종(肅宗) 乙卯(一六七五)에 수계(壽階)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제수하셨다.숙종(肅宗) 甲子(一六八四)卒 享年九十歲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셨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종질(從姪) 순필(舜弼) 등 여섯 사람과 의병을 일으켜 문강공(文康公) 안방준(安邦俊) 선생이 한 집안에서 칠의사(七義士)가 나왔다고 감탄하였다. 戊寅(一六三八)에는 의병을 일으킨 문희순(文希舜) 등 설흔 여섯 명이 정자천(程子川) 위 조용한 곳인 파라동(巴羅洞: 지금은 草田)에다 대명사(大明社)와 정자를 짓고 계(契)를 만들어 봄과 가을에 명(明)나라가 망한 슬픔의 뜻을 폈다. 공의 유사(遺事)는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과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 태고정(太古亭) 문희순(文希舜)의 문집(文集)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광주(光州)의 창의관(彰義館)에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다. 墓보성군 노동면 초전리(草田里) 을좌(乙坐)인데 비석이 있다. 一九九三年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편사관(編史官) 김후경(金厚卿)이 지은 병자충의비(丙子忠義碑)는 감정동(甘井洞) 선영(先塋)에 모셨다.配정부인(貞夫人) 興德張氏(흥덕장씨) 庚子(一六00) 四月十三日生 戊辰(一六二八) 二月十四日卒 墓부묘(?超讖?) 父장진(張縉) 祖장이무(張以武) 曾祖참봉(參奉) 장위(張偉)配정부인(貞夫人) 晉州蘇氏(진주소씨) 庚戌(一六一0) 四月三日生 庚戌(一六七0) 四月十三日卒 墓부우(?超猖?) 父승사랑(承仕郞) 조지서 별제(造紙署別提) 소민해(蘇民?凋?) 祖소몽삼(蘇夢三) 曾祖소장(蘇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