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옥천(순창)조씨 개관 > 유래
         
순창은 백제시대 도실군(道實郡)인데 통일신라 경덕왕 때 순화군(淳化郡)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 때는 순창(淳昌)으로 고쳐서 남원부(南原府)에 속하였고 충숙왕 원년(忠肅王 元年)에 승격시켜 군(郡)이 되었으며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순창군(淳昌郡)으로 이어오고 있다. 옥천(玉川)은 순창(淳昌)의 고호이며, 1702년에 시보(始譜) 발행시 본관을 순창(淳昌)으로 부르다가 1890년에 대동보(大同譜) 발행 시는 본관을 옥천(玉川)으로 하였으며 1999년도 대동보(大同譜)에는 본관을 玉川(淳昌)으로 병행 발간해서 사용하고 있다.

옥천(순창)조씨는 고려에서 광록대부 검교대장군 수 문하시중(光祿大夫 檢校大將軍 守 門下侍中)을 지낸 조 장(趙 璋)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장(璋)의 아들 홍규(洪珪)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고, 손자 전(佺)이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추증(追贈)되었으며, 전(佺)의 동생 여(璵)가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고려말 趙씨를 현족으로 자리하게 한 인물은 4세조 충헌공(忠獻公) 원길(元吉) 호 농은(農隱)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1년에 등과하여 관직이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르렀는데 정몽주 설장수 등과 공양왕 옹립 일등공신이 되어 대광보국 광록대부(大匡輔國光祿大夫) 추증분의 익대필성 극복공신(推忠奮義 翼戴弼成 克復功臣)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封)해졌다. 은퇴 후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선생과 선생과 더불어 오은(五隱)이라 칭하였다.

원길(元吉)의 장남 영(瑛)은 고려조 전공 판서를 자냈고, 차남 유(瑜)는 고려조 전농시부정(典農寺副正)을 지냈으며, 조선조 태종이 영(瑛)에게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을 명했으나 형제 모두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절의(節義)를 지켰고, 유(瑜)가 서거(逝去)후 세종이 예관을 보내 장사지내고 “孝子前副正趙瑜之閭(효자전부정조유지려)”라는 旌閭(정려)를 내렸다. 3남 근(瑾)은 조선조에 광양현감(光陽縣監), 4남 염(琰)은 보공장군 절제도위겸 북도함성만호장(保功將軍 節制都尉兼 北道咸城萬戶長))을 지냈으며, 4세조 지후공(祗候公) 원기(元奇)의 아들 연(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吏曹判書), 완(浣)은 정순대부(正順大夫) 서주부사(西州府使)로 후대로 내려가면서 문세(門勢)가 번창하였다.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의하면 玉川(淳昌)趙氏(옥천(순창)조씨)는 2015年度 基準(기준)53,406名으로 調査(조사)되었다.

시 도
서 울 6,189 5,980 12,169
부 산 1,034 1,064 2,098
대 구 179 212 391
인 천 1,517 1,449 2,966
광 주 2,644 2,591 5,235
대 전 397 434 831
울 산 252 201 453
세 종 76 76 152
경 기 6,513 6,265 12,778
강 원 239 230 469
충 북 244 265 509
충 남 525 558 1,083
전 북 2,482 2,444 4,926
전 남 3,800 3,644 7,444
경 북 222 262 484
경 남 593 601 1,194
제 주 124 100 224
전 국 27,030 26,236 53,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