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崙(지륜)정통(正統) 丙辰(一四三六)生 매죽헌(梅竹軒) 성삼문(成三問) 공이 재주와 행실이 뛰어난 것으로 천거(薦擧)하여 제릉참봉(齊陵參奉)에 제수되고 봉렬대부(奉列大夫)로 삼례도찰방(三禮道察訪)을 지내셨다. 丙子(一四五六) 이후에 벼슬을 사양하고 부유향(富有鄕:지금의 昇州)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잘 모시고 형제들과 우애를 극진히 하시면서 만년을 지내셨다.홍치(弘治) 癸亥(一五0三) 四月二十日卒 壽六十八歲 墓순천시 쌍암면(雙巖面) 서당동(書堂洞) 간좌(艮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이 묘갈명(墓碣銘)을 짓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이 묘지명(墓誌銘)과 이로재기(履露齋記)를 지었다.配영인(令人) 晉州河氏(진주하씨) 丙辰八月二十六日生 戊辰十一月十七日卒 壽七十三歲 墓부군(府君)의 묘 아래 왼쪽 간좌(艮坐)로 비석이 있다. 父강장공(剛莊公) 하한(河漢) 祖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慶復) 曾祖병조판서(兵曹判書) 하승해(河承海) 外祖소윤(少尹) 안처(安處) 공(公)의 재실(齋室)인 이로재(履露齋)가 오랜 세월을 지내는 동안 퇴락(頹落)하여 一九九五年 후손들이 힘을 모아 중수(重修)하여 모습이 새롭게 되었는데 후손(後孫) 동주(東胄)가 중수기(重修記)를 지었다. 또 진주(晉州)에 있는 도천사(道川祠)는 바로 강장공을 제사하는 사당인데 지난 을사년에 다시 세웠다는 말을 듣고 우리 집안에서도 몇 사람이 제사에 참석하여 작은 정성을 바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