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戌(一四一八)生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인(舍人)이 되어 세 임금을 섬겼다.세조(世祖) 己亥(一四五五)에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임실(任實) 식산촌(食山村)에 자리잡아 사시면서 조포도(潮浦島)에다 작은 정자를 짓고 날마다 고을의 여러 어진 분들과 시(詩)를 지으며 즐기셨는데 그 정자 터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고을 사람들이 조사인(趙舍人)의 정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시들은 『문헌고(文獻考)』에 보인다. 癸卯(一四八四)卒 墓실전되어 癸亥(一九八三) 十月 임실군(任實郡) 임실읍 갈마리 선영(先塋) 아래 유좌(酉坐)에 단(壇)을 설치하여 제사를 받들고 있다.配숙부인(淑夫人) 報恩成氏(보은성씨) 父이조판서(吏曹判書) 성계원(成繼元)!70子 從南(종남) 벼슬은 중랑장(中郞將)을 지내셨으며 자세한 사적(事蹟)은 전하지 않는다. 墓오랜 세월이 지내는 동안 실전(失傳)되어 후손들이 임실군 임실읍 갈마리 선영(先塋) 아래 유좌(酉坐)에 단(壇)을 설치하여 음력 시월 초사일에 제사를 받들고 있다.配竹山安氏(죽산안씨) 父안경제(安敬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