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4/27일 건립 계획인 아버지 효행비 준비관계로 아버지 행적을 정리하면서 몇군데 검색하다보니, (저는 그동안 잊어먹고 있었는데)예전에 제가 썼던 글이 하나 나오는 군요. 그래서 여기에 다시 올려 봅니다.
조양익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 지 모르지만(아마 현주공파 인 듯...), 그 분이 관리자로 있는 <옥천(순창)조씨 카페>에 2004년 8월 17일, <아버지, 오!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이하 베껴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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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읽는 사람이 없어도 좋습니다. 아니 겨우 한사람만 읽어도 됩니다. 몇자 적어 보죠.
수택상신(手澤尙新)이라는 말이있습니다. 이럴때 "澤"은 못택이 아니고 "윤기 택"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수택상신>이라는 말은 書經이나 禮記에도 나오는 말로서, "(어버이가 돌아가시고) 어버이의 손 때가 오히려 새롭다"라는 뜻입니다.
이곳에 며칠 전에 느꼈던 생각을 써보고자 합니다.
11/9일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보성에 갔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인접면(노동면)에 있는 入보성 도암공 諱 纘자 할아버지 이하 누대의 분들에게 올리는 시제를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객지에 있다보니 아쉽게도 그 곳 시제에는 처음 참석하였습니다.
보성군 노동면 감정리.... 아주 떵떵거릴 정도의 규모는 아니어도 그래도 조촐하게 재각이 있었습니다. 永陶齎(영도재)라는 현판과 마루에는 그 재각 건축에 관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의 비석은 저의 형님(죽포 조득승)이 쓰신 것들이었습니다.
맨앞에 추진위원장 남홍(南洪).... 이어서 아무개, 아무개.....
그 액자를 보는 순간 불현듯 15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88년 올림픽 하던 해, 가을날 저의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한학을 많이 하신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문중일도 많이 하셨습니다. 순창, 순천에도 무척 많이 다니셨습니다. 아직도 아버지 이름을 거명하면 왠만한 분들은 다 아십니다. 보성에 사시던 "後石 조남홍"(字는 台勳)
(혹자는 이런 자를 두고 아버지 자랑이라고 하실지 폄하하실지 모르지만, 저의 생각에는 아버지께서 그만큼 노력하신 결과 현주공파 派譜(파보)도 만들어 내시고... 감정동에 그만한 재각도 지으셨다고 봅니다.)
그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가을 비가.... 생전에 그토록 올곧고 양심적인 분께서 그 일을 해 내시기에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 빗 속에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숨결을 거기서 느꼈습니다. 아니 거기서 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다시한번 저를 가르치시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살아라고, 바르게 살아라고, 집안을 빛내라고...
우리 현주공파 후손 여러분.... 여러분들은 자식들에게 어떤 손길을, 숨길을 남기시렵니까? 手澤尙新(수택상신)이라.... 제 자식도 훗날 나를 두고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요? 우리 모두 앞세대들은 후인들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